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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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ㆍ저 자김영숙
ㆍ역 자
ㆍ구 분 국내서
ㆍ발행일2010년 01월 11일
ㆍ정 가
ㆍ페이지216 페이지
ㆍISBN978-89-6053-087-4
ㆍ판형170×220
ㆍ출판사


  
현대미술은 어렵다?


이유는 현대의 미술에 늘 요구되는 이론을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특히나 이 모든 일들의 진행을 순차적으로 수용해온 서구와 달리, 한꺼번에 다양한 미술의 담론들을 쓰나미처럼 맞이해야 했던 한국의 실정에서는 이 생경함과 난해함, 그리고 거북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의 상실』을 쓴 톰 울프는 1970년대에 벌써, 현대 미술이 지나치게 이론화되어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거부감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 그 자체가 미술이 되기까지 하는 이 바닥에서 이론을 무시하고서는 어떤 작품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결국 이제는 미술의 이론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그 이론을 쉽게 설명해줄 누군가의 부재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문화적 요구에 답해 선보인 『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은 현대미술에 대해 이미 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 막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독자를 위해, 현대미술에 겁 없이 도전하는 소위 ‘막가는’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하겠다.

언제나 그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대의 미술가들은 저 멀리서 떨어진 외계의 ET가 아닌, ‘우리’의 모습을 닮은,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우리의 ‘아이들’이며, 우리의 ‘할아버지들’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유년의 언어들을 그들은 아직도 구사한다. 그들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더 이상은 피터 팬이 없다고 믿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꿈 때문이다. 거칠고 험악하게 세상에 욕을 해대는 그들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허무한 노년의 세계를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않아서이다. 늙어감을 부정하기 위해 보톡스를 맞는 것처럼, 우리는 조로증을 앓는 현대 미술가들이 설명하는 황혼기의 고통을 굳이 모른척하고 싶어 한다. 어찌 보면 그들 미술가들은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함께 담은 거울이다. 거울 속의 내 모습, 거울이 된 그들. 그들이 된 나, 내가 된 그들. 공간과 시간이 다 뒤죽박죽된 채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풍부한 컬러 도판과 마치 친한 친구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가의 편안하고 재미나는 글 솜씨로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했던 현대미술을 향해 용기 있게 한 걸음 내딛어보자.


책 속으로

뒤샹의 샘은 어느 날, 6달러만 내면 누구든지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독립 살롱전’에 변기를 하나 떠억 하니 가져다놓았다. 이름하여 <샘>. 누가 봐도 그건 변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뒤샹이 대리석을 가져다놓고 미켈란젤로처럼 돌덩어리에서 영혼이 된 변기의 형상을 칼끝으로 파거나 깎아내서 만든 것도 아니다. 당시 미국의 남성 화장실이면 어김없이 놓여 있는 즐비한 상품 중의 하나를 그냥 가져다 놓은 것에 불과하다. 처음엔 심사위원들이 “장난하나?”라고 치워버렸던 그 작품, 지금은 현대 미술을 알리는 시조처럼 신줏단지 모시듯 모셔지고 있다. (중략)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존재하던 변기가 미술가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엄청난 담론들에 의해서 미술 작품으로 부활한 것이다. ‘소변금지’라는 말과 흉악한 가위가 그려져 있지 않아도, 우리 중 누구도 그곳에 소변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습게도, 우리가 기실 미술이다, 미술이 아니다, 예술이다, 예술이 아니다 라고 논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뒤샹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41~45쪽]

하다못해 빈 캔버스에 칼로 흠집을 낸 미술가도 있다. 폰타나의 <공간구성>을 보라. 어찌 보면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으니 추상화라 할 수 있겠다. 혹은 캔버스 자체를 하나의 만들어진 결과물로 본다면, 추상조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건 조각이건 그 침묵의 여백과 칼자국 속에서 우리는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긴, 혹은 그림으로 그리기엔 너무나도 벅찬 어떤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텅 빈 당신의 마음. 그리고 그 빈 마음에 기어이 흠집을 낸 무자비한 그 어떤 힘, 그 자체를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떻게 보면, 폰타나의 그 작품은 캔버스에 대한 도발과 저항으로 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꼭 그려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캔버스에 대한 폰타나의 발칙한 저항이 칼이라는 폭력적인 언어와 교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126쪽]

 
저자 소개 | 김영숙
1964년 대구 출생. 고려대학교 서반아어 문학과를 졸업하고, 주한 칠레 대사관과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대학 시절, 아마추어 서클인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를 연주하기도 했을 정도로 클래식과 재즈 음악 감상을 광적으로 즐긴다. 그림 애호가로서 온라인에 연재한 글이 출판되자, 마흔 나이에 늦깎이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그녀는 틈나는 대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여전히 재즈와 그림에 매료되어 살고 있다. 현재 L.A.의 앤드류 샤이어(Andrewshire) 갤러리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한편, 미술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사진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그림 속 예수를 만나다』, 『파리블루』,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지독한 아름다움』, 『나도 타오르고 싶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공저)이 있으며, 역서로는 『엘 그레코』가 있다. 그밖에 『내가 제우스였다면?』, 『내가 헤라클레스였다면?』, 『그림으로 읽는 어린이 세계사』,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미술책』과 같은 어린이를 위한 책도 다수 집필했다.
3,240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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